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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무에타이를 시작하다

#2일차 - 난생 처음 내 손에 들어온 권투 글러브

체육관을 가기 전 무에타이를 인터넷에 처음으로 검색해봤다.

 

영상을 몇개 보는데 이거 너무 살벌하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하겠다고 등록했는지 스스로도 신기하다.

 

체력이 부족해서 어제 비틀비틀 했던 걸 떠올리니 갑자기 창피했다.

 

방에서 어제 배운 스트레칭도 해보고 플랭크도 해봤다.

 

어깨랑 허리가 같이 아팠다.

 

다친적은 없는데 오로지 자세가 안좋아서 생긴 통증들이다.

 

디스크를 진단받은적도 검사를 받은적도 없다.

 

영상을 몇개 보는데 나처럼 35살에 시작한 올해 마흔 되시는 이승아 선수의 영상이 보였다.

 

나와 같은 나이에 시작하시긴 했지만,

 

기본기가 워낙 태권도같은 운동으로 단련되어 있으셨고

 

경영학과를 졸업하시고 결혼 후 한체대를 다시 입학하셨다고 한다.

 

일단 키도 170이 넘는 장신에 기본기가 탁월하셔서 프로세계에서 상당히 인정받는 분이신 듯 하다.

 

그리고 현재 연습중인 20살의 꽃다운 처자의 영상도 보았다.

 

즐기면서 하는게 눈에 보여서 덕분에 내 자신감은 또 하락.

 

다시 스트레칭도 괜히 해보고 그러다가 시간이 되서 체육관으로 갔다.

 

터덜터덜 걷는중에 내옆으로 지나가는 아저씨 세분의 대화가 들려왔다.

 

"내가 나이가 있으니까... 아니 뭐 배우면 배우는데 거 쉽지가 않아..."

 

아...

 

중년에게 배움이란...

 

고작 나는 서른 다섯 먹고 "이 나이에 뭐하는 거지? 좀 편하게 살면 안되나?" 라고 생각했었다.

 

우연히 지나가면서 들린 그 말이 내 귀에 때려박혔다.

 

그래 중년에게는 도전하는 것도 어렵고 결국 포기하는 순간도 슬플거다.

 

우리 부모님도 그러하실테지.

 

"가자 가, 나는 잘 하고 있다."

 

체육관에 도착하니 입구에서 자녀를 촬영중인 한 부모님이 서 계셨다.

 

집에와서 생각해보니 그 땐 아무 생각 없었는데 난 혼자구나.

 

잘하든 못하든 내가 뭔가를 할 때 가족이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모습을 본게 언제던가.

 

난 이 서울 한복판에 혼자 뚝 떨어져 사는데.

 

도망치듯 뛰쳐나와 독립해서 자유와 맞바꾼 외로움과 불안정함도 내가 안고 가야한다.

 

난 성인이니까.

 

하지만 친구와 남동생이 잘 해보라고 했으니까 더 이상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자.

 

그 부모님 두분을 피해 문을 여니 앞 수업의 수강생들의 열기가 엄청났다.

 

남녀가 비슷한 성비로 있었다.

 

모두 상기 된 얼굴로 모든것을 쏟아부은 모습이었다.

 

그런 열정과 뜨거운 열기를 가까이서 느끼니 기분이 좋았다.

 

어제 해보고 좀 어땠냐고 하시는 관장님의 물음에 

 

허리가 좀 괜찮아지던 중이었는데 통증이 있다고 말씀 드렸다.

 

내가 워낙 체력이 없어서 그것부터 잡아주면서 갈거니까

 

좀 늦더라도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관장님께서 하자는대로 따라오라고 하셨다.

 

"집에서 플랭크도 몇번 하고 왔어요. 앞으로 제가 좀 일찍와서 개인운동을 조금 한 다음 수업들어갈게요."

 

"무리하면 안돼요. 다칠 수 있으니 일단 수업시간 맞춰서 매일 나오세요. 그리고 달리기랑 플랭크는 허리에 안좋으니까 당분간은 하지 마시구요."

 

아... 

 

내가 잘하는 게 생각하는 것 하고 달리면서 생각하는 건데...

 

어제는 생각을 많이 하지 말라 하셨고,

 

오늘은 달리기를 하지 말라고 하신다.

 

음.

 

달리기는 안할 수 있다. 

 

생각은 어떻게 멈추지?

 

어제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오늘 이렇게 또 생각이 많았는걸.

 

일단 알겠다고 대답하고 믿고 따라가 보자.

 

"선생님. 제 성향이 사실 좀 많이 정적이에요. 허리도 안좋고, 체육관에 다른 수강생들한테 괜히 민폐 아닌가 모르겠어요. 제가 시간 아끼려고 운동도 할겸 긴 머리도 자르고 왔는데. 잘 못 온거면 어쩌죠"

 

"체력이 예상보다 안 좋긴 하지만 못할 거 없습니다. 멋있어요. 내가 목표의식이 생기려 하네. 일단 스트레칭 들어갑시다."

 

그래 운동하러 왔으니 많은 말은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도 울상을 있는대로 지었지만 마스크가 가려줘서 괜찮았다.

 

스트레칭은 수강생 다같이 하는거고 순두부 선생님이 지도하셨다.

 

오늘은 어제봤던 김용만 아저씨도 없고 카리스마 눈빛의 여자 코치님도 안계신다.

 

하루하루 낯설다.

 

관장님께 여쭤보니 내가 여자코치님이라고 불렀던 분도 오래 된 수강생분이라고 하셨다.

 

얼마나 오래하신건지는 모르지만 눈빛만큼은 선수같았는데.

 

스트레칭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비틀대고 제대로 따라하지 못했다.

 

런닝시간에는 걷기만 하라고 하셨다.

 

남들 뛸 때 나는 걸었다.

 

천천히.

 

원래 부족하고 모자라면 두배세배 하는거라고 세상살이 하면서 배웠는데 운동 초보에게는 아닌가보다.

 

스트레칭과 런닝이 끝난 후 관장님께서 직접 지도해주셨다.

 

어제는 순두부같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었는데 아무래도 나같은 몸치는 가르치기가 힘드셨을거다.

 

오늘 처음 글러브를 꼈다.

 

[오늘 배운 것]

 

1. 무에타이 기본 자세

 

나는 오른손잡이니까 왼쪽발이 앞이고 오른쪽이 뒤로 가야 한다.

 

먼저 11자로 다리를 벌린 후 오른발을 한 걸음 뒤로 하고

 

발은 90도가 안되게 7-80도로 비튼 모양이 올바른 발 모양이다.

 

ㄴ 자 모양이 되면 안되고 거꾸로 된 ㅅ자 모양이 좀 더 가깝다.

 

그 자세 그대로 배에 힘을주고 엉덩이를 빼지 않고 직선으로 살짝 내려간다.

 

이 때 무릎을 아주 살짝 내리면 왼쪽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게 왼쪽다리 힘이 60% 오른쪽 다리가 40%쯤 들어간다.

팔은 ㄴ자 모양이로 주먹을 살짝 쥐고 양손을 관자놀으 근처로 가져다 대는데

간격은 너무 좁아서도 넓어서도 안된다.

왼손이 좀 더 앞이고 오른손은 얼굴에 좀 더 가깝게 붙인다.

이게 기본자세.

 

2. 스텝

 

복싱처럼 빠르지 않다.

 

일단 앞으로 옆으로 갈때 다리가 교차되면 안 된다.

 

거울에 내 두 다리가 다 보여야 한다. 뒷발이 앞발로 가려지면 안 된다.

 

3. 미트치는 법

상대방이 동그랗고 푹신한 올챙이모양 판(미트)을 양손에 잡고 내가 그걸 치는거다.

미트 칠 때 쨉(원)은 왼손 라이트(투)는 오른손.

 

세개 치려고 하지 말고 살짝 용수철처럼 튕겨 나갔다 치고 바로 돌아 오는 것 처럼.

라이트 칠때는 오른쪽 발목이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뒤꿈치를 들고 다리가 일직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

 

4. 샌드백치는 법

 

미트처럼 왼쪽 오른쪽이 아닌 내 시선 직선이 모이는 중앙을 친다.

 

샌드백이 멀어지면 스텝으로 앞으로 가서 치고 뒤로도 가면서 친다.

 

 

 

관장님이 해보라고 하셔서 처음 한것도 있고 어제 배운것도 해봤는데

 

하루 해봤다고 조금 나아졌는지 칭찬해주셨다.

 

그런데.

 

원 투를 하는데.

 

이게 뭐지.

 

세상 근심 걱정 아무 생각이 안 나는게 아닌가.

 

게다가 심장도 뛰었다.

 

머리가 비워지고 가슴이 뛰다니.

 

이런 경험을 내가 한 적이 있었나.

 

고등학생 시절 핸드볼 경기를 할 때도, 첫 직장에서 여자축구 경기를 할 때도 그랬었을까.

 

하지만 항상 의욕만 있었지 난 정말 운동에는 소질이 없다고 스스로가 증명되던 때였다.

 

나는 항상 운동하는 것이 좋았지만, 

 

많이들 그렇듯이 귀찮고 힘들고 잘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의욕이 솟구치면 냅다 달리기를 한다든지 등산을 갔었다.

 

하지만 항상 뭔가 부족했었다.

 

달리기와 등산은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회귀하면 끝이 나거나 하산하면 끝이 났으니,

 

허무할때도 있었다.

 

내몸은 뭔가 온몸으로 하는 운동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남들에게는 말 못한다.

 

설레발치다가 또 관둘까봐 내 스스로가 걱정이 된다.

 

그렇게 혼자 샌드백 치는 연습을 했다.

 

요즘은 체육관에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가 없다.

 

이 몹쓸놈의 역병때문에 마스크를 끼고 하려니 관장님도 수강생들도 답답해 했다.

 

그런데... 음... 나는 좋았다.

 

답답한거 이제 적응도 되었고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마스크를 쓴 게 좋았던 이유는 사실 나는 숫기도 없고 낯선곳에서 낯선사람들 틈에서

 

내가 잘 모르는 무언가를 한다는 게 정말 너무 힘이들고 어려운 일이다.

 

나는 과거에 불안증과 공황장애도 앓았었다.

 

그래서 뭔가 방에서 미친듯이 조사해보고 의욕넘치게 생각하고 결정하고

 

큰 결심을 한 뒤 막상 실행하러 집밖으로 나가면 그게 잘 지속이 안되었었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 하니까 이상하게 부끄러움 없이 열심히 배웠다.

 

지금은 쉬운것만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빼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솔직히 나는 마스크 쓰고 하는게 더 좋다.

 

오늘 관장님께서 알려주신 스트레칭도 집에서 열심히 하고 자야겠다.

 

하루 왠종일 생산적이지 못한 생각을 하면서 일과를 보냈었는데.

 

무에타이가 내 심장을 뛰게 했다.

 

제발 이 마음 오래 갔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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